tvN 드라마 '마인'은 상류층 재벌가의 세계를 배경으로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심리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기존의 재벌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막장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마인'은 이를 뛰어넘는 철학적 질문과 치밀한 인물 설정으로 시청자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망은 이 드라마의 핵심적 긴장 요소로 작용하며, 각 캐릭터의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서로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본 글에서는 '마인'의 중심 인물들 간의 관계 구조를 세밀히 분석하여, 이 작품이 왜 단순한 가족극을 넘어서 깊이 있는 드라마로 평가받는지 조명해보겠습니다.
서희수와 정서현의 관계 (자기 정체성과 여성 연대)
서희수(이보영 분)는 화려한 영화계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여배우였지만,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하면서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내려놓고 H그룹의 둘째 며느리가 됩니다. 그녀는 단지 결혼한 여성, 그리고 어머니의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만의 삶의 방향성과 가치를 찾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남편의 외도, 시댁의 억압적인 분위기, 그리고 하준의 출생의 비밀로 인해 점차 위태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정서현(김서형 분)은 H그룹 장남의 아내이자, 그룹의 실질적인 실권자입니다. 그녀는 강인하고 냉정한 겉모습 속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시댁의 전통을 수호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으로서의 자유와 정체성을 향한 갈망을 품고 있습니다. 서희수와 정서현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서서히 이들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결국에는 같은 여성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서로를 지지하게 됩니다. 이들의 연대는 단순한 가족 내 여성들 간의 협력 그 이상입니다. 이 연대는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 속에서 스스로의 ‘마인(Mine)’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며, 각자의 선택을 통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여성 서사의 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입니다. 정서현이 자신의 연인 수지최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서희수가 결국 하준의 친모가 아님을 알면서도 아들의 엄마로 남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단순한 갈등 해결에 그치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여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강자경과 하준의 존재 (숨겨진 진실과 상류층의 위선)
강자경(옥자연 분)은 겉으로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의 가정교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준의 친모이자 서희수의 남편인 한진호의 내연녀입니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H그룹 안으로 스며들고, 서서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갈등을 유발합니다. 강자경은 이 드라마에서 단순한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녀 또한 사랑받지 못한 과거와 하준을 향한 모성애를 품고 있는 인물로,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이중적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하준은 서희수가 자신을 낳은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어린 나이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그는 성숙한 시선으로 주변 어른들의 위선을 바라보며, 어린아이답지 않은 깊이 있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의 존재는 서희수에게 있어서 모성애와 희생의 결정체이며, 드라마 전체의 도덕적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강자경과 하준은 단순한 혈연 관계를 넘어서, 이 드라마에서 진실과 위선, 정체성과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강자경이 친모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려는 과정은 상류층 가문이 숨기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을 들추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그녀의 존재는 H그룹이 겉으로는 도덕과 품위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공간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강자경의 행보가 불러일으키는 파장은 단순한 개인의 복수가 아닌, 가족 구조와 사회적 지위, 도덕성의 붕괴를 보여줍니다. 특히 서희수와의 갈등은 ‘어떤 사람이 진짜 엄마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지며, 생물학적 모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이 갈등은 서희수의 성장을 도와주는 계기가 되며, 그녀가 진정한 의미의 ‘마인’을 자각하게 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한진호와 H그룹의 내부 붕괴 (권력, 무능, 전통의 쇠퇴)
한진호(이현욱 분)는 서희수의 남편이며, H그룹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책임감 없는 성격과 외도로 인해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남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의 후광 아래서만 존재할 수 있는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가정을 책임지려는 태도조차 없으며, 위기 상황에서도 도피적 태도로 일관합니다. 정서현의 남편인 한진용(박혁권 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그룹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자신의 아내에게 의존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두 형제 모두 가족 내에서는 아버지의 명성과 권위에 기대어 살아가는 대표적인 ‘2세’들로, 남성 중심 재벌가의 허약한 기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룹의 실질적 운영은 정서현이 맡고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 합리적 판단과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 인물입니다. 이는 남성 중심 재벌가의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문을 잇는 아들’이 중심이었지만, 현대에서는 능력과 자율성을 지닌 인물이 리더로 부상하는 시대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H그룹 내부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 불균형한 권력 구조는 한국 사회의 일부 기업 문화와 유사하게 묘사되며 현실성을 부여합니다. 겉으로는 품위 있고 완벽한 가문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 다툼, 이중적인 삶, 그리고 도덕적 파탄이 존재합니다. 이와 같은 설정은 단지 드라마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된 구조를 반영한 고발로 읽힐 수 있습니다. 드라마 후반부에 이르러, H그룹의 권력 구조는 점점 무너지고, 그 자리를 진정한 리더십과 도덕성을 지닌 여성 인물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권력의 이동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전환을 나타냅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전통적 가족 구조의 붕괴를 통해 ‘진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마무리됩니다. '마인'은 단순한 재벌가 이야기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섬세하고 상징적인 구조를 가진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고, 각자의 상처와 욕망, 선택을 통해 입체적인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여성 인물들은 단지 주변 인물이 아닌,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으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의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단순한 재미를 넘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진짜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복잡한 인물 관계와 세련된 연출, 그리고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마인'은 K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합니다. 마지막까지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서사의 완성도는 물론, 각 인물의 변화와 성장을 통해 우리는 ‘진짜 내 것(Mine)’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이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