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방영된 tvN 드라마 ‘스타트업’은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청춘, 창업,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라, 20~30대 청년들의 도전과 성장,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진정성 있게 풀어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서달미(배수지), 남도산(남주혁), 한지평(김선호)의 삼각관계가 주요 이슈로 회자되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보면 스타트업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드라마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드라마 ‘스타트업’을 다시 재조명하며, 인물들의 서사와 메시지, 창업이라는 소재의 활용 방식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수지가 연기한 서달미, ‘청춘’의 대표 아이콘
드라마의 중심인물인 서달미는 그 자체로 ‘청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꿈을 키우다 이별을 경험하고, 이혼한 부모 아래에서 언니와 갈라지며 성장한 그녀는 경제적 기반도 없고, 뚜렷한 커리어도 없는 평범한 청년입니다. 하지만 그런 서달미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믿음’과 ‘끈기’입니다. 누구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려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수지는 이 서달미 캐릭터를 매우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게 그려냈습니다. 기존 로맨스 여주인공들이 종종 수동적이고 판타지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서달미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입니다. 실제 스타트업 업계에서 ‘서달미 같은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녀는 시대가 원하는 청춘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고 샌드박스에서 창업을 결심하게 되는 흐름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서달미의 인물 서사는 비단 감정적으로만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창업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 초기 팀 빌딩의 어려움, 발표와 피칭에서의 긴장감, 투자자 앞에서의 좌절 등은 현실 창업과 유사한 디테일을 담고 있습니다. 서달미가 리더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은 단순한 러브라인의 도구가 아니라 드라마 전반을 이끄는 동력이었으며, 이 점에서 ‘스타트업’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운 성장 서사의 좋은 이야기가 됩니다. 또한 서달미는 감정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팀원을 믿고 이끌며 아이디어를 현실화해 나가는 모습은 조직 내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배수지의 서달미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꿈을 좇는 모든 청춘의 내면을 대변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업 현실을 담은 서사, 드라마로 보는 스타트업 세계
‘스타트업’이라는 제목처럼 이 드라마는 청춘들의 창업 도전기를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단순히 스타트업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창업이 지닌 리스크와 가능성을 극 중 캐릭터들의 삶 속에 녹여내어 몰입감을 극대화한 것이 이 드라마의 큰 강점입니다. 특히 '샌드박스'라는 가상의 창업 인큐베이터 공간은 현실의 디캠프, 팁스(TIPS), 마루 180 등 한국의 실제 창업지원기관들을 모델로 했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를 더합니다. 남도산이 이끄는 삼산텍은 전형적인 개발자 중심 스타트업입니다. 기술은 뛰어나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발표나 전략 수립에는 서툰 모습은 초기 스타트업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이에 비해 서달미는 전략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 능력, 대외 네트워크를 갖춘 리더 역할을 수행하면서 ‘기술+비즈니스’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두 인물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구조는 스타트업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닌 팀워크’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극 중 피칭 장면, 투자 유치 과정, 해커톤 미션 등은 단순한 연출을 넘어 현실 창업 생태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과정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발표 시간 3분 제한, 슬라이드 구성, 질문 대응, 초기 투자자의 성향 등 세부 장면 하나하나가 실제 창업자와 예비 창업자들에게 참고가 될 정도로 디테일합니다. 그만큼 작가가 사전 조사와 업계 자문을 충분히 받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창업이 단순히 꿈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여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실패를 통한 배움, 좌절을 통한 재정립, 동료와의 충돌을 통한 성찰이 반복되면서 인물들은 점차 단단해집니다. 창업 성공이라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인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매우 성숙한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 다양한 기술 아이템 역시 현실 기반입니다. 인공지능 시각 인식 시스템, 자율주행, OCR 기반 문서처리 등은 모두 현재 창업계에서 실제로 시도되고 있는 기술이며, 극 중 캐릭터들의 개발과 실패 과정은 기술 스타트업의 치열함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잘 드러냅니다. 창업이라는 소재를 그저 화려한 배경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에 진지하게 녹여낸 점에서 ‘스타트업’은 다른 청춘 드라마들과 확실히 구별됩니다.
남도산 vs 한지평, 삼각관계 그 이상의 심리전
드라마에 큰 화제 중 하나는 바로 삼각관계입니다. 서달미를 둘러싼 남도산과 한지평의 감정선은 많은 시청자들의 열띤 토론을 이끌었습니다. 처음에는 지평의 이름으로 도산이 편지를 쓰고, 이후 정체가 드러나면서 혼란과 갈등이 생기는 설정은 흔한 클리셰 같지만, 이 드라마는 그 감정의 복잡함과 성장 서사를 섬세하게 엮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남도산은 개발자이자 내성적인 청년으로, 세상과의 거리감이 있는 인물입니다. 반면 한지평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투자 전문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가진 인물입니다. 이 둘은 단순히 ‘좋은 남자 vs 나쁜 남자’로 구분되지 않으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서달미를 지지하고, 스스로의 감정과 성장의 방향을 찾아갑니다. 특히 남도산은 드라마 초반에는 소극적인 캐릭터지만, 점차 자기 의사와 목표를 분명히 하며 리더로 성장해 갑니다. 실리콘밸리에서 3년 동안 스스로의 기술력과 존재감을 키운 후 돌아온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성숙한 파트너’였습니다. 그는 끝내 편지의 진실을 마주한 후에도, 과거를 탓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반면 한지평은 누구보다 덜미를 오랫동안 지켜봤고, 성장의 배경이 되어준 인물이지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항상 한 발짝 뒤에 머무르며 갈등을 겪습니다. 그의 방식은 보호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거리감을 만들었고, 그 점에서 ‘가까이 있지만 멀어진 관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서사는 사랑의 감정보다 더 깊은 ‘미련’과 ‘후회’를 담고 있기에 더 현실적이죠. 이 삼각관계의 구조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달미는 두 사람 모두를 통해 성장했고, 각 인물 역시 달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결국 드라마가 말하는 사랑은 ‘같이 있을 때 더 나아지는 관계’라는 점이며, 이 감정의 종착점은 성장한 달미와 도산의 동행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지평의 감정 역시 실패가 아닌, 성숙한 감정의 과정으로 그려진 점은 이 드라마의 섬세한 서사 설계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도, 창업 드라마도 아닌, 청춘의 복합적인 감정과 성장 과정을 밀도 있게 다룬 복합장르 드라마입니다. 다시 보면 더욱 섬세한 장면, 놓쳤던 대사, 복선들이 보이며, 세 인물의 선택과 변화가 지금의 우리 삶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의 현실이 불안하고 흔들리더라도, 스타트업이 보여준 것처럼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다시 떠오르시면서 다시 한번 드라마를 정주행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