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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가장 따듯한 히어로물(드라마 리뷰)

by 블리해블리 2025. 11. 12.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포스터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포스터

 

JTBC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초능력이라는 판타지 소재를 담고 있지만, 정작 이야기의 중심에는 ‘가족’, ‘상실’, 그리고 ‘인간다움’이 있습니다. 최근 많은 드라마들이 화려한 히어로물이나 스릴러 장르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이 작품은 오히려 속도보다는 감정을, 스펙터클보다는 관계의 깊이를 선택하며 2024년 상반기 가장 따뜻한 히어로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장기용과 천우희라는 두 배우가 보여주는 섬세한 감정 연기, 그리고 ‘초능력’이라는 설정을 삶의 은유로 활용하는 연출 방식은 기존 장르물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합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이 드라마가 전하는 서사, 캐릭터의 힘, 연출과 메시지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초능력보다 중요한 건 관계, 히어로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제목부터 역설적입니다. 주인공들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히어로’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힘을 숨기거나, 두려워하거나, 외면하려 하죠. 특히 장기용이 연기한 ‘복동’은 능력을 가졌지만 삶 자체는 평범하고 조용한 인물입니다. 그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채, 세상과 일정 거리를 두고 살아가며,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설정은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 반드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기존 히어로물의 공식을 깨뜨립니다. 대신 이 드라마는 “히어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중심에 둡니다. 복동의 능력은 사건 해결이나 거대한 전투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작고 일상적인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사용되며, 이는 시청자들에게 더 큰 감정적 울림을 줍니다. 천우희가 연기한 ‘이정아’ 캐릭터는 복동과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그녀는 현실 속의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이정아는 복동에게 ‘다시 연결되는 법’을 알려주는 존재로, 이야기의 감정 축을 이룹니다. 이 두 인물이 서로를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고 변화하는 과정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트라우마를 딛고 회복해 가는 치유 서사로도 읽히며, 많은 시청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가족이라는 테마: 상실과 회복의 드라마

드라마의 큰 테마 중 하나는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의 붕괴, 그로 인한 상처, 그리고 다시 가족이라는 형태를 회복해가는 과정이 드라마 전반에 걸쳐 이어집니다. 복동은 사랑하는 와이프를 잃었고, 이 사건은 그의 성격과 삶의 태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칩니다. 반면 이정아 역시 가족 내에서 겪은 갈등과 상처로 인해 외로움에 익숙한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틀을 피상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혈연을 넘어선 가족, 상실 이후에도 이어지는 관계, 그리고 ‘가족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복동이 주변 인물들과 맺는 관계는 단순한 이웃을 넘어서 ‘선택된 가족’으로 확장되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조연 인물들의 서사 또한 인상 깊습니다. 복동의 이웃, 직장 동료, 어린 조카 등 각 인물들은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 연결되고 부딪히며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각 인물의 사연이 정교하게 엮여 있는 점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주인공 중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드라마에 더 깊은 몰입도를 부여합니다. 드라마는 종종 가족이라는 말이 지닌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가족은 가장 큰 위안이 될 수도, 동시에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죠.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이 양면성을 감성적으로 잘 담아내며, 결국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단절된 관계가 어떻게 다시 이어지는지를 천천히, 하지만 깊게 보여주는 전개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영상미와 연출: 판타지적 감성과 현실의 조화

비주얼적으로도 매우 섬세한 감성 드라마로 초능력이라는 판타지 설정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청자가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복동의 능력이 발현되는 장면은 빛과 소리, 화면의 흐름 등으로 감각적으로 표현되며, 이는 ‘판타지’보다는 ‘감정’에 더 가까운 방식입니다. 이러한 연출은 초능력이 서사의 중심이 아닌, 감정과 상징의 매개체임을 보여줍니다. 시각적 효과는 자극적인 과장이 아닌,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는 “초능력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이라는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공간의 활용도 인상 깊습니다. 복동이 살아가는 동네는 따뜻한 빛과 어스름한 색감으로 연출되어, 현실 속이지만 어딘가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반면 이정아가 마주하는 직장이나 외부 세계는 차갑고 날카로운 톤으로 대비되며, 두 사람의 세계관이 어떻게 충돌하고 변화하는지를 시각적으로도 잘 표현해 줍니다. OST 또한 극의 감정선을 부드럽게 이끌어갑니다. 따뜻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잔잔한 보컬 중심의 곡들은 인물들의 대사 없이도 그 감정을 전달해 주며, 시청자에게 깊은 몰입을 제공합니다. 음악은 인물의 감정 곡선과 정확히 맞물려 있어, 전체적인 몰입도와 여운을 극대화합니다. 무엇보다도 인물 간의 거리감, 카메라 워킹, 대사의 여백 처리 등 섬세한 연출 방식은 마치 한 편의 독립 영화나 일본식 감성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연출 철학은 이 드라마가 단순한 장르물이 아님을 다시금 증명해 줍니다.

결론: 화려하지 않아서 더 깊은 히어로물의 새로운 기준

전통적인 의미의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로, 대신 그 자리를, 상처받고도 살아가는 사람들, 상실을 안고도 사랑하려는 이들, 외면당해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인물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옆 사람 하나를 구해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구원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히어로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2024년, 경쟁과 속도, 성과 중심 사회에 지친 우리에게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속삭이듯 말합니다. “당신은 괜찮아.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히어로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작은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전하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